재활용 농서 「농가집성(農家集成)」

[농업]

주요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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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 옛기술 및 지혜
이 농서의 편찬 목적은 임진왜란과 병자, 정묘 두 호란 등으로 모든 농서들이 인멸되어 권농에 어려움을 겪게 됨으로써 이를 해소하고자 한 데 있었다. 신속이 본 책의 발문에서 밝힌 바, “자신은 경험을 통하여 「농사직설(農事直說)」을 농가의 귀감으로 확신하고 있었는데 그 인본(印本)이 전하여지지 않고 있는 사실을 목격하고 있으면서도 식자들이 이를 방치하고 있어서 한심스럽게 생각한다. 따라서 자신이 이를 판각하여 세상에 널리 보급시키려 한 것”이라는 것이었다.1) 결과적으로 「농가집성(農家集成)」은 1444년에 반포되었던 세종의 권농교문, 신속 자신이 증보한 정초의 「농사직설(農事直說)」, 3개의 주자(奏子) 권농문, 강희맹이 편찬한 「금양잡록(衿陽雜錄)」과 「사시찬요초(四時纂要抄)」 5종의 농서를 합철하여 편찬한 책이 되었다. 즉 세종, 정초와 신속, 주자, 강희맹 등 제가의 책을 집대성시킨 것이며, 당시까지의 한국 독자적인 농업기술을 집성한 위에 중국의 농업기술을 보충한 셈이었다. 또 분야별로도 주곡, 특작, 원예, 축산 등이 망라된 다양한 종합농서가 된 것이다.2) 「농가집성(農家集成)」의 내용은, 농본(農本)에 대한 훈시적, 선언적 내용과 수령들의 권농 책무를 강조한 세종의 권농교문, 당시의 관행농법을 속방(俗方)으로 추가하고 여기에 토양 개량, 올벼 못자리 요령, 논에서 잡초를 불태워 방제하는 법, 기장과 조의 개선된 재배법, 보리와 밀, 참깨의 개선된 재배법, 증보된 목화재배법이 보강되었던 신속의 증보본 「농사직설(農事直說)」과 주자3)가 지남강군 수령이던 때(1192)의 권농문, 그리고 별도로 소개한 「금양잡록(衿陽雜錄)」과 「사시찬요초(四時纂要抄)」가 편입되어 있다.
□ 토의 및 평가
「농가집성(農家集成)」은 공주 목사 신속(申洬, 1600~1661)이 1655년에 편찬한 종합농서이다. 「농사직설(農事直說)」을 증보시킨 것만으로는 종합농서가 될 수 없지만, 그 외의 여러 사람이 쓴 관련된 기존 농서나 문장들을 집대성함으로서 결과적으로는 경종(耕種) 이외의 내용이 보충된 종합농서의 형태를 갖추게 된 책이다. 「농가집성(農家集成)」이라는 제목이 뜻하는 바는 “농가(農家), 즉 농학자의 여러 설(說)을 모았다(集成)”는 말이 된다.4) 신속(1600~1661)은 일찍부터 진사가 되어 음관(蔭官)으로 별제(別提)를 거치고 영주군수로 있으면서 문과에 급제하였던 인물이지만 외숙 김자점(金自點)의 역적죄에 연좌되어 관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효종의 사부로서 북벌계획을 펼쳤던 송시열의 천거로 양근(양평), 서원(청주), 공주 등지의 수령직을 맡고 농학에 진력하며 「농가집성(農家集成)」을 실제로 편찬하였던 것이다. 허균의 「한정록(閑情錄)」과 고상안의 「농가월령(農家月令)」까지 합철되지 못한 점이 안타깝다. 이 농서를 현대사적 입장에서 재평가한다면, 「농가집성(農家集成)」에서 본받아 알 수 있는 바는, ① 15세기 이래로 당시까지의 한국 농학, 특히 독자적인 농서를 대부분 한 책으로 집대성한 공로가 인정되고, ② 주곡 중심의 「농사직설(農事直說)」에 주곡 이외의 다양한 농업 영역을 망라하여 재편성한 보합성과 종합성이 탁월하며, ③ 당시까지 혼작(混作) 중심의 기술을 앞세우던 체계로부터 단작(單作) 중심의 기술 체계로 바뀌는 과정을 근대적으로 밝힌 농업경영적 재배지침을 확립하였다는 데 있으며, 따라서 그 가치가 높게 인정된다.
□ 결론 및 시사점
조선왕조의 시작과 더불어 농업중흥의 시정이 베풀어지고, 많은 독자적 농서들이 출간되기에 이르렀으나 급조된 독자기술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고쳐지거나 취사 선택될 기술들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기존의 농업사상이나 기술서를 한 편으로 집대성하며 한꺼번에 모으고, 첨삭 가감하여 새로운 기술로 재활용토록 집필 된 책이 「농가집성(農家集成)」이다. 최근에도 친환경농법이 연구되는 과정이지만, 새롭게 요구되는 기술을 처음부터 모조리 새롭게 시험연구되는 실태는 시간적으로나 재원적으로 온당치가 않다. 우리의 옛 기술이나 일제강범기에 시도되었던 시험결과들이 산적되어 있다. 이것들에 현대적 방법과 자재를 이용하여 가공함으로 기존지식을 재활용토록 하는 노력이 더욱 시급하다고 하겠다.
□ 인용 및 설명문
1) 신속(1655) 「농가집성(農家集成)」 발문(농촌진흥청 2004 고농서국역총서 7) : “農事直說......臣於居鄕試之有驗信農家之龜鑑也第恨印本無傳知者盖置玆乃鋟梓.....廣布於世人得而行之也”. 2) 김영진(1984) 「조선시대 전기농서」 농경연 : 184-187. 3) 주자는 성리학 뿐만 아니라 농학에도 조예가 깊었던 중국의 학자로서 농학과 관련된 그의 칠언시(七言詩)가 이를 반증한다. 즉, “나에게 만일 비탈밭 3백 묘(畝)만 빌릴 수 있다면 푸른 등 밝혀 밤새우며 농학을 연구하겠네”(今得山田三百畝 靑燈徹夜課農書)라 한 바로도 잘 알 수 있다. 주자의 권농문은 12세기 이전의 중국 강남(양쯔강 이남) 농법을 권농적 차원에서 이야기한 것으로 풀이된다. 4) 金榮鎭․李殷雄 (2000) 「朝鮮時代 農業科學技術史」, 서울대학교 출판부.

발행정보

농업 상세정보 중 발행정보
도서명 고농서의 현대적 활용을 위한 온고이지신 제1권
발행기관 농촌진흥청
페이지수 223 ~225 / 301
발행일 2008/12
DB공개일자 2010년 2년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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